* 17,277 오월을 좋아한다. 열두 달 중에 제일. 높고 파란 하늘이 좋고, 여름을 가져 오려고 은근히 날을 데우는 것도 좋다. 길에 늘어선 나무 이파리들이 묵직해지는 것도 좋고, 올려다 보면 눈이 부셔 머리가 아뜩해지는 것도 좋다. 스가와라는 오늘따라 유난히 맑은 하늘을 향해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목에 대충 두른 땀수건이 팔랑댔...
*4,844 아, 집에 돌아왔나 보네, 토비오. 오랜만에 여기서 불 켜진 네 방을 올려다 보고 있으니 오늘도 연습은 열심히 했는지, 어디 아픈 덴 없는지, 저녁은 든든히 먹었는지 그런 생각해보나마나 한 것들이 또 궁금해진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는데 이불은 따뜻한 걸로 꺼냈는지, 방에 난방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걱정이야. 이런 잔소리를 하면, 저는 몸에 열...
*4,881 운동복이나 교복이 아닌 옷을 입은 카게야마를 보는 것은 역시나 좀 어색했다. 스가와라는 자신의 맞은편에서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오렌지 주스에 꽂힌 빨대를 쪽쪽 빨고 있는 카게야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얼굴로 도대체 왜. 스가와라는 다시금 하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 온 한숨을 푹 내쉬었다. 히나타를 비롯한 ...
*10,785 스가와라는 짜증이 났다. 요 며칠 계속해서 그랬다. 다이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그 짜증이 조금 덜해졌다가, 다이치가 눈 앞에 나타나면 더 많이 나고 하는 그런 식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다이치는 늘 그랬듯이 스가와라가 멀리서부터 보일라 치면 그 큰 손을 들어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늘 그랬듯이 어딜 가든 스가와라의 옆에 서서 걸었고, ...
*27,409 화려한 간판들과 시끄러운 음악 소리로 어지러운 번화가의 대로변에서 한 길 꺾어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한산한 주택가가 나타났다. 눈길을 잡아 끄는 작은 카페나 소품 가게들이 간간이 들어서 있는 좁은 길을 시오리는 망설임 없이 앞장서 걸었다. 이제 다 왔어, 그녀가 뒤에 쳐져 따라오는 사와무라를 어르듯 손을 뻗었다. 사와무라는 제 연인이 건넨 그...
*20,627 * 좁은 화장실에 갇힌 채 스가와라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제멋대로 뛰는 가슴은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슬아슬하게 잇고 있었던 관계를 이제 정말 끝내야 할 때가 이런 식으로 와버렸다고 그는 생각했다. 보고 싶어. 모순적이게도, 그와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그의 얼굴...
*7,302 스가와라는 언젠가, 바닥에 실금이 간 걸 알고도 왠지 미련이 생겨 버리지 못했던 유리잔을 꺼냈다. 버리지 않고 둔 걸 보면 또 다이치가 잔소리를 할 것 같아서 그는 찬장 구석에 몰래 그것을 숨겨뒀었다. 이거 봐, 다 쓸 일이 생기잖아. 스가와라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후, 하고 불자 잔 바닥에 쌓였던 먼지가 풀풀 날아 올랐다. 그는 수도꼭지를 ...
*15,206 - ……. 그럼 수고해. 마지막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다이치가 머뭇머뭇 인사를 건넸다. 오늘 비품 정리 당번인 자신을 남겨두고 먼저 가는 게 못내 아쉬운 얼굴이었다. 정말이지 다이치는 쓸데 없이 다정하다니까. 하릴없이 계속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그의 등을 억지로 떼밀어 내보낸 뒤 비품실에 혼자 남은 스가와라는 우선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브러져...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